지난 100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스티브 잡스. 그는 2005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초청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퇴를 하고 정규 과목이 아닌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때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간 그 여백의 다양함을, 그리고 무엇이 위대한 글자체의 요소인지를 배웠습니다. 이 중 어느 하나도 제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10년후 첫 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우리가 설계한 메킨토시에 그 모든 것을 넣었으니까요. 매킨토시는 그렇게 아름다운 서체를 담은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만약 당시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지금의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스티브 잡스가 그토록 성스러워했던 서체 수업은 리드대학의 성직자 출신 교수 로버트 팔라디노(Robert Palladino)의 강의였다. 개인적으로, 지금은 고인이 된 이 노교수로부터 애플의 전설은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과연 무엇이 스티브 잡스에게 그토록 폰트를 숭배하게 만들었을까?
<수형기(水衡記)>에 등장하는 고사성어, 화룡점정(畵龍點睛). 양나라 장승요가 금릉에 있는 안락에 눈동자 없는 용 두 마리를 그렸다.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느냐는 물음에 장승요는 눈동자를 그리면 용이 하늘로 날아가버리기 때문이라고 답했는데, 사람들이 그 말을 믿지 않자 한 마리에 눈동자를 그렸더니 그 용은 하늘로 날아가고, 나머지 용은 그대로 남았다고 한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에도 어딘가 한군데 부족한 점이 있을 때, 우리는 ‘화룡에 점정이 빠졌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난 폰트를 정의 할 때 늘 이 ‘화룡점정’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모리사와코리아의 고객사인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 회사들이 최근 일본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최근 리니지 2 레볼루션이 일본에 진출해 한국 모바일 게임 최초로 '매출 1위’를 기록했다. 물론 워낙 게임이 훌륭했지만, 폰트가 화룡정점을 찍었다고 믿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파트너사는 ‘그램퍼스’라는 게임 개발회사다. ‘마이리틀셰프’라는 요리 시뮬레이션 게임을 글로벌 서비스하는 곳인데, 어느 날 폰트를 구매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실 모리사와의 인게임 폰트와 같은 임베딩 폰트는 고가여서 중소 게임회사가 구매해 사용하기에는 다소 부담이 되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구매의사가 있다면 ‘이 회사는 분명 무엇인가 있을 것’이라는 호기심에 회사를 방문했다. 그리고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대표를 만났는데, 그는 폰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코스트를 최대한 줄여야 하는 현재 회사 사정상, 모리사와 폰트를 사용하는 것은 사실 무리입니다. 하지만 그 무리를 감내해서라도 꼭 저희 게임에 사용하고 싶습니다. 폰트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요소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난 그에게서 스티브 잡스가 오버랩 됐다. 결국 ‘마이리틀셰프’는 게임 제작자라면 누구나 동경한다는 ‘Google Play 2017 올해를 빛낸 게임’에 선정됐고, 매일매일 승승장구해 나가고 있다. 재작년 동경본사에서 근무했을 당시, 모리사와의 주요 고객사 중 한곳인 기린 맥주를 방문해 디자인 및 상품 담당 타키자와 나미(瀧澤 奈美)총괄 부장과 나눴던 담소 내용을 끝으로 나의 글은 이만 갈음 할까 한다.
본인의 생각과 철학을 대변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서, 폰트가 가지고 있는 힘은 매우 놀랍습니다. 우리는 그 힘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또한 최대한 이용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폰트가 우리 디자인에 방점을 찍어준다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 폰트를 사용하고 싶지 않을까요? 그런 폰트들을 많이 만들어 주세요.
네. 그런 폰트를 만들기 위해 지난 100년동안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리고 멈춤 없이 모리사와는 매 순간 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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